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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15 JTBC 스페셜] 한강 둔치 편의점 ‘바가지 영업’

꿈이 좋아 2018. 1. 31. 10:49

[채널 15 JTBC 스페셜] 한강 둔치 편의점 ‘바가지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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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4개 지구 11곳의 한강 편의점이 물건값을 올려 받아오다 JTBC 보도 직후 정상가로 되돌렸다. [JTBC 화면 캡처]

돈을 주고받는 작은 창 하나만 덜렁 있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 오징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빈 컵라면 용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곳. 한강에는 그런 ‘깡통 매점’이 있었다. 굳이 반추하자면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가 분한 주인공의 일자리랄까. ‘괴물’이 개봉한 2006년, 서울시는 대규모로 둔치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었다. 그 결과 간이 매점은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말쑥한 편의점이 들어섰다. 서울시는 한강시민공원 1개 지구당 3, 4곳에 편의점을 입점시켰다. 한강시민공원 전역에 걸쳐 두 개 컨소시엄과 최종 계약했다. 컨소시엄을 만든 사람들은 영화 속 송강호와 같은 간이 매점상이었다. 수십 명이 출자해 일종의 유한회사를 만들고, 편의점 체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8년간 독점 운영권을 얻었다. 영세 상인의 일자리를 보전해주기 위한 조치였다.

 간이 매점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신용카드를 안 받는 건 기본이고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통용됐다. 서울시가 편의점을 들인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공정하게 물건값을 받으라는 것. 주말을 맞아 모처럼 가족과 함께 강변을 찾은 시민들이 매점 때문에 기분 망치는 일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강 편의점의 가격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시민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최혜정(23·여)씨는 “캔맥주 하나를 사도 시중 편의점에 비해 비싼 것 같다”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받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보도 이전의 ‘바가지 가격표’(오른쪽 위)와 보도 이후 바뀐 ‘정상 가격표’(아래). [JTBC 화면 캡처]
 ◆매장마다 가격 차이=편의점 건물이 세워지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지 3~4년째. 실제로 현장을 점검해보니 상당수 한강 편의점에선 ‘바가지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편의점 컨소시엄의 내부 자료를 통해서도 바가지 요금이 재차 확인됐다.

 일일 매상을 본사에 보고하는 영업일보만 봐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핵심은 업체 측 스스로 ‘매가 변경 차이 금액’이라고 표기한 부분. 한마디로 정상 판매가를 기준으로 더 올려 받은 돈이 하루에 얼마인지를 기록한 항목이다. 한 달 전 작성된 한 편의점 영업일보에는 그 금액이 10만820원으로 적혀 있었다.

 비슷한 시점의 11개 점포 자료를 비교해보니 정가 외로 번 돈이 적게는 하루 몇만원부터 많게는 수십만원으로 파악됐다. 여의도지구에서 판매원으로 일했던 A씨는 “벚꽃놀이나 불꽃놀이 기간 같은 최고 성수기에는 최소 수백만원씩 더 벌어들였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방식은 교묘했다. 하나하나 따졌을 때 가격 차는 크지 않았다. 눈속임을 위해서다. 많아야 수백원 수준. 서울시에 신고한 정상가 1200원인 과자 한 봉지가 1500원으로 둔갑하고, 500mL 생수 한 병을 50원씩 더 받고 파는 식이었다. 컵라면과 캔맥주·캔커피·물티슈 등 한강 나들이객이 많이 찾는 물건을 가격 조정의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담배처럼 뻔히 드러날 품목은 ‘바가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심지어 매장마다 가격을 달리한 경우도 있었다. 똑같은 컵라면을 A지구 매장에선 개당 50원 더 받는데, B지구 매장에선 100원 더 받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손님이 더 많은 편의점에서 ‘바가지 상술’이 한층 기승을 부리는 것도 ‘깡통 매점’ 시절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취재에 들어가자 편의점을 운영하는 컨소시엄 업체 측은 “거스름돈이 귀찮아 그랬다”고 해명했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부가세가 (제품의) 10%인데 잔돈 받기가 어려워 950원이면 1000원을 받거나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궤변이라는 게 편의점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다.

 ◆어떻게 속였을까=한강 편의점들은 어떻게 가격을 속인 걸까? 비밀은 전자 매대, 이른바 ‘포스(POS)기’ 조작에 있었다. 물품 재고와 판매가 등을 전산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본사 서버와 실시간 연동된다. 가령 포스기에서 해당 점포에 진열된 ‘○○컵라면’을 클릭한 뒤 단가를 조정해 넣는 것. 이 때문에 손님이 받는 영수증에는 올린 가격이 정상 가격인양 출력된다.

 판매원 A씨는 “팀장이나 점장이 조정된 가격을 입력한다”면서 “가격 조정은 본부(컨소시엄 업체)와 상의 아래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컨소시엄 업체는 물론 편의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체인 업체 역시 포스기를 통해 이런 ‘단가 조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체인 업체가 승인하지 않으면 그 가격에 팔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인 업체 관계자는 “점포별로 전산에 그런 기능이 있다”면서 “점장이 임의로 할 순 없고 우리와 협의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계약 위반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와 컨소시엄 업체가 맺은 사업계약서에 따르면 한강 편의점들은 물품가를 한강사업본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고, 같은 체인이 관리하는 시중의 다른 가맹점과 판매가를 다르게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중 장부를 꾸려 벌어들인 돈의 규모는 대체 얼마나 될까? 컨소시엄 지분을 가진 B씨는 “재무제표상 연간 매출이 105억원 정도로 보고되는데 아마 실제 매출은 140억~150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강하게 부인했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영업매출 보고는 어떻게 속일 수가 없다”면서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강사업본부 측은 “(JTBC에) 보도가 나간 뒤 탈세 의혹에 대한 세무 조사를 서울지방국세청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3년간 감시 소홀=해당 편의점들이 문을 연 건 2009년 9월께. 벌써 3년이 다 돼 간다. 판매원들에 따르면 한강 편의점을 관리·감독하는 한강사업본부가 실제 판매가를 조사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당연히 ‘바가지 운영’에 대해 과태료 등 행정 처분을 내린 적도 없었다.

 취재진이 현장 취재로 문제점을 파헤치자 서울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전 직원을 동원해 연휴 3일간 암행 감찰에 나섰다”면서 “실제 구매한 금액과 단가표상 금액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게 확인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판매원들은 ‘암행 감찰’이 한 발 늦었다고 말한다. 판매원 A씨는 “(JTBC 보도 이후) 이미 가격을 제자리로 돌려놨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 아니냐”고 반문했다. 보도가 나간 뒤 편의점 체인 본사는 포스기로 판매가를 조작하지 못하게 전산으로 막아버렸다. 실질적으로 매장을 운영·관리하는 컨소시엄 업체 역시 “판매가를 임의로 바꾸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편의점에 보냈다. 또 매대의 ‘바가지 가격표’를 떼고 ‘정상 가격표’를 붙이라고 주문했다.

 3년간 ‘무풍지대’에 놓여 ‘바가지 요금’을 받았던 한강 편의점들이 모처럼 제값을 달고 나들이 온 시민들을 맞고 있다. 이런 유쾌한 영업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다소 흥을 깰지 몰라도 ‘이거 바가지네’ 싶은 한강 편의점을 발견하면 꼭 기억했다가 다음 날이라도 슬쩍 서울시에 귀띔을 해주는 센스가 한강을 푸근하게 지켜가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