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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고객만 모르는 변액보험 수익률

꿈이 좋아 2018. 1. 27. 09:35

[J Report] 고객만 모르는 변액보험 수익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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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액연금보험에 매달 30만원씩 부어 온 회사원 김모(29·여)씨는 최근 고심 끝에 계약을 해지했다. 지난해 1월부터 납입한 보험료 300만원 중 돌려받은 돈은 불과 103만원(35%)에 불과했다. 김씨는 “평소에도 변액연금 수익률이 얼마인지, 내가 가입한 상품의 실적이 어떤지 정보를 구하지 못해 답답했는데 최근 수익률이 물가 상승률도 못 따라잡는다고 해 해지를 결심했다”며 “이런 식으로 9년 더 돈을 부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 대형 보험사 A사는 요즘 변액연금보험 관련 문의만 하루 500여 통을 받고 있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이 변액연금의 수익률에 대한 자료를 발표한 후폭풍이다. 이 회사 변액연금 상품 판매는 이달 들어 30% 줄었다. “더 이상 변액연금을 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돕니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소비자 사이에서 ‘보험은 못 믿겠다’는 인식이 확산할까 두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변액연금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이 내놓은 변액연금보험 수익률 분석 결과로 인한 충격 때문이다. 상품 해지 문의는 빗발치고 가입 문의는 크게 줄었다. 전문가는 “문제는 수익률이 아니라 수익률에 대한 정보의 부재”라고 지적한다. 소비자가 상품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보고서가 나오니 혼란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보험사가 이른바 ‘정보 3不(불명확·불친절·불투명)’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혼란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불명확한 용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수익률’이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보험사와 소비자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회원이 낸 보험료 중 11% 안팎의 사업비를 떼어낸 다음 돈을 굴린다. 투자된 돈에 대해서만 수익률을 따져 고객에게 제시해왔다. 소비자 입장에선 자신이 낸 보험료 전체에 대한 수익률을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매달 30만원씩 4년이 넘게 변액연금을 부어오던 서초동에 사는 주부 김선숙(41)씨는 “그동안 수익률이 4% 안팎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인해 보니 지금까지 쌓인 금액이 원금에도 못 미친다고 하더라. 정확한 수익률 개념을 설명 듣지 못해 속은 기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기철 숭실대 보험수리학과 교수는 “수익률의 정확한 개념은 설명하지 않으면서 최고 수익률 기록만 큼지막하게 써놓고 가입을 권유하는 것이 지금의 보험 가입 방식”이라며 “보험료 중 몇%가 사업비로 쓰이는지, 그중 얼마가 보험 판매자 수익으로 돌아가는지를 정확히 밝히도록 해야 소비자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친절한 수익률 고지 방식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투자신탁사나 자산운용사가 굴리는 펀드 상품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기간별 수익률을 조회할 수 있다. 변액연금보험도 주식·채권에 투자해 운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수익률을 확인하기는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보험사는 매 분기 고객에게 ‘자산운용보고서’를 발송해 변액연금이 편입된 펀드별 수익률을 알려줄 뿐이다. 소비자는 주식형·채권형·혼합형 펀드가 각각 낸 수익률은 알 수 있지만, 이를 합쳐서 내 보험료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비자는 매달 투자 대상 비중을 바꿀 수 있지만 이를 제대로 알려주는 이도 없다.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험 모집인의 평균적인 전문성이 펀드 판매자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이들 중 상당수가 1년이 채 되지 않아 직업을 바꾼다”며 “상품 가입 단계부터 전문성 있는 설명을 듣지 못할 확률도 높고, 가입 이후에도 상품에 대해 편하게 문의할 상대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느 회사의 어떤 상품이 많이 팔렸는지, 어떤 상품의 수익률이 가장 높은지에 대한 정보도 불투명하다.

금융투자협회가 펀드 공시를 통해 각 자산운용사의 펀드별 판매 규모, 펀드별 수익률, 판매 보수와 수수료를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험업계는 “국내 변액연금 상품은 대부분 사망보험과 펀드, 연금이 결합된 복잡한 형태라 수익률을 표준화해 알려줄 수 없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대안이 회원별 수익률 분석이다. 해당 상품을 가입한 회원이 평균 얼마 정도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지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김은경 교수는 “변액연금의 경우 연령별·펀드 편입 비중별 수익률이 달라 공시 방식이 복잡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차츰 적응해 나갈 것”이라며 “소비자가 스스로 정보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정보 비대칭 현상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보험업계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소비자가 불투명한 보험 상품에 가입하느니 다른 금융 상품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소비자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는 시장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 보고서를 낸 것”이라며 “단기 상품에 비해 납입액이 크고 평생 가입해야 하는 것이 변액연금인 만큼 소비자도 꼼꼼히 정보를 따져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